역사적 사건의 온전한 진실 (1):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격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공격해, 8척의 전함과 10척의 해군 함정들을 침몰시키거나 파괴했고 전투기 188대를 폭파했으며 미군 2천 여 명이 사망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허즈번드 키멀(Husband Kimmel) 제독과 하와이 육군 사령관인 월터 C. 쇼트(Walter C. Short) 장군은 공개적으로 직무에 태만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진주만 공격은 미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게 진주만 공격에 대해 알려진 공식적인 설명이다.
정말 미국이 뒤통수를 맞은 기습 공격이었을까?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 게 일본이고 미국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은 전혀 기습도 아니었고, 일본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미군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감췄다면 적절한 방어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을 맡은 미군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키멀 제독과 쇼트 장군은 진주만 공격 조사를 맡은 로버츠 위원회(Roberts Commission)에 미국 정부가 사전에 공격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했지만,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키멀 제독과 쇼트 장군은 자발적으로 군사재판을 요청해 증거를 제시했고, 재판에서 루스벨트 정부가 일본의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던 사령관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출되었다. 군사재판을 맡은 재판관들은 분노했고 키멀과 쇼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군사재판의 결과를 비밀에 부쳤으므로 미국 국민은 감쪽같이 속았다.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가 일본의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 중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영국 이중간첩 더스코 포포프(Dusko Popov)는 진주만 공격 석 달 전에 연방수사국(FBI)에 이 사실을 전달했다.
-미군 준장 엘리엇 소프(Elliot Thorpe)로부터 네 차례나 일본의 공격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를 받은 미국 정부는 더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 말라고 소프 준장에게 명령했다.
-워싱턴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 무관인 F. G. L. 베이에르만(F.G.L. Weijermann)는 공격 며칠 전 미국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George Marshall)에게 경고했다.
-미국 하원의원 마틴 다이즈(Martin Dies)는 일본의 공격 의도를 보여주는 일본 군사정보 전략 지도를 국무장관 코델 헐(Cordell Hull)에게 전달했지만 헐 장관은 다이즈 의원에게 그 정보를 공개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일본의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파헤친 주인공은 로버트 B. 스티너트(Robert B. Stinnert)이다. 그는 정보의 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에 따라 미국 정부에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고, 미군이 일본의 통신 암호를 해독해 일본의 모든 외교 메시지와 해군 통신 내역에 접근할 수 있었고 미국이 입수한 일본의 통신 내역 가운데는 진주만 공격 12일 전인 1941년 11월 25일 일본 야마모토 제독이 보낸 다음과 같은 통신 내용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수 부대는 하와이 해역으로 진입해 미국 함대의 주요 전력을 공격하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
스티너트는 또한 해군 정보국 극동 지역 담당관인 아서 H. 매컬럼(Arthur H. McCollum)의 개인 기밀문서 속에서 메모를 발견했는데 그 메모에는 일본이 명백한 전쟁 행위(Overt Act of War)를 하게 만들려면 일본을 자극(provoke)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8항목의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대영제국이 부과한 수출 금지에 발맞춰 일본의 모든 교역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1941년 7월 26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프랑스가 약탈하고 있던 식민지 인도차이나(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를 일본이 점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내의 일본 자산을 모두 몰수했고 영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도 미국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일본은 해외 교역의 4분의 3에 대한 접근을 잃었고 석유 수입은 88% 줄었다. 알다시피 일본은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한다.
2001년 <워싱턴 타임스>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적십자 단체를 이끌고 있던 돈 C. 스미스(Don C. Smith)의 딸 헬렌 해먼(Helen Hamman)을 인터뷰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친이 참석한 백악관에서 열린 극비 회의에서 진주만 공격이 발생하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니 그 사태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의 부친이 항의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영토가 공격 받지 않는 한 미국 국민은 절대로 참전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 국민 중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미국 정부가 진주만 공격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래도 믿기지 않는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물론 이 사건에서 희생된 용감한 미군들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미국 정부의 기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싱가포르 주둔 함대 소속 영국 해군 대령 러셀 그렌펠(Russell Grenfel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사악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고 믿지 않는다. 미국은 일본의 공격을 충분히 예상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바라기까지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참전을 바랐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일본 측이 먼저 적대적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려고 노심초사했다.”
1944년, 영국 생산성 장관 올리버 리틀턴(Oliver Lyttleton)도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도록 자극 받았다.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주장은 역사 날조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대의(the greater good, 미국의 참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기만을 국가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반역 행위로 보는 이들도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미국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폴 크레이그 로버츠(Paul Craig Roberts)는 “민주주의 국가 정부는 절대로 자국 국민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청맹과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가는 별개다. 하나를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하나에는 맞설 수 있다.
진주만 공격의 진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국가 권력층이 참전을 결정하거나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국가 지도자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기꺼이 자국 국민을 희생한다. 셋째, 정부 관리들은 두 번째 사실을 기꺼이 은폐한다. 넷째, 진실이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다섯째,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범행이 알려질까 극도로 두려워한다.
“진실은 사자와 같다. 방어해줄 필요가 없다. 풀어놓기만 하면 알아서 스스로 방어한다.(Truth is like a lion. You don’t have to defend it. Let it loose. It will defend itself)”
-작자 미상-





짐작했던 얘기지만 군 수뇌부에게까지 비밀로 했는줄은 몰랐네요. 무서운 미국정부네요. 그나 저나 호주는 만 16세 미만은 social media 막는 법이 통과, 10일 부터 적용했는데 Substack 마저도 사진 찍어 검증하네요. 너무 순식간에 검증 완료가 되서, 얼굴이 많이 늙어 보이나부다 절망했네요 😅
뭔 명분이 몇 천명의 자국민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요 ㅠㅠ